羽生結弦season14·15

하뉴 유즈루 - 하뉴가의 가훈.

철벽녀김양 2015. 2. 1. 22:55

오늘도 하뉴 소식은 없이....

2015년 새하뉴를 보지 못한채 1월이 훌렁훌렁 지나갔네.

(무슨 참치 주는 시상식 수상 메시지 보낸게 2015년에 찍은걸까나? 궁금궁금.)

딱히 새 인터뷰도 없어서ㅠㅠ  오늘은 웹기사 해석이나...

웹기사는 번역기 돌리면 되지만 이건 꽤 내용이 길어서리...ㅎㅎ 보존용으루다가.


원문

http://gendai.ismedia.jp/articles/-/41840


하뉴 유즈루는 왜, 그토록 마음이 강한 것인가. 그의 스케이트를 본 사람이 품는 의문이다. 

평소에는 소년처럼 천진난만한데, 경기 중의 눈빛에는 불꽃이 깃든, 천재 스케이터를 키운 부모의 실상에 처음으로 다가간다.


눈에 띄지 않으며 겸허한 양친


연패를 달성한 그랑프리 파이널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하뉴 유즈루(20세)에 이런 질문이 갔다.


"아이를 하뉴​​선수처럼 키우고 싶은 엄마가 많지만, 어떻게 해야 하뉴선수처럼 자란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뉴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생각하고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저'입니다. 인간은 한 사람으로써 같은 사람은 없고, 가지각색입니다. 

저에게도 나쁜 곳은 많이 있습니다.하지만 나쁜 곳만이 아니라, 

좋은 부분을 봐 주시면 (아이는) 기꺼이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역경에 맞서는 강한 정신력,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행동 - 

하뉴 유즈루를 볼 때 세상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저렇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단지, 그래서 팟하고 생각나는것이 있다.

하뉴의 부모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왜냐하면 하뉴의 부모는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한 적도 없으며

바깥 무대에 등장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유즈루의 부모가 나서지 않는 것은, 열심히하는 것은 본인이며, 부모는 관계 없다는 생각이에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도"우리가 잘난체 하며 말할것은 없다"고 말을 했어요. 

나서지 않으며 많은것을 말하지 않는, 두 사람 모두, 진정한 동북 사람의 기질을 가진 부모입니다"


하뉴집의 가까운 친구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식이 겸손하다면 부모도 겸손. 도대체 하뉴가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 천재 하뉴 유즈루가 자라났는가. 

그 비밀을 찾기위해 본지는 하뉴의 고향 센다이로 날아갔다.


하뉴가 태어나고 자란 것은 센다이시 이즈미 구. 

부모님과 누나의 4인 가족으로 아버지는 중학교 교감으로 근무,어머니는 전업 주부, 

4살 위의 누나는 하뉴의 홈 링크였던 아이스 링크 센다이의 직원으로 일하고있다.


하뉴가 태어나고 자란 현영주택은, 센다이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피겨는 부츠와 의상, 링크비용 등, 대단히 돈이 드는 스포츠입니다. 

가족의 협력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하뉴 집은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가난하지는 않지만, 

부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임대료 5만엔에 검소하게 살고있었습니다. 

절약하기 위해, 도리없이 3년 전까지 유즈루의 의상은 엄마가 만들었어요 "(앞에서 이야기한 친구)


눈이 내리는 가운데 하뉴 집의 문패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인근 주민들이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금메달 획득 후, 집으로 취재가 쇄도했을것, 그래서 작년10월경 하뉴가는 

센다이 시내의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어쩔 수 없이, 센다이 시내에 사는 외조부모의 자택을 찾아가 보았다.


취재로 온 사실을 말하자, 할머니는 인터폰 너머로 "도쿄에서 모처럼 와준 것은 죄송합니다만, 

손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라고 미안하다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라고 부탁하니 조금씩 대답해 주었다.


- 하뉴 선수의 인간성은 부모님을 비롯, 주변분의 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그 아이의 부모는 당연한 일을 해 온 것 뿐입니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하뉴가에는 '가훈'같은 것은 있습니까.


유즈를 키운 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 조부모가 여러가지 말한것 같은 기사가 나와 버리면, 부끄러워서 살 수 없어요.


- 유명하게 되어도 부모님을 비롯해 모두가, 나서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뉴가의 방침입니까?


노력하고있는 것은 유즈 본인이니까요.


- 부모님의 확고한 교육이 있어서 하뉴 선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딸이 아니라, 교사를 하고있는 아버지가 훌륭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사람 이니까요.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어릴때 하뉴는 야구를 하던 아버지의 영향에서 공놀이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단정한 외모에서 여자아이로 착각하는 일도 있었지만, 주위에서는 밝고 장난꾸러기로 보인 하뉴 소년. 

하지만 사실 다른 아이에 비해, 선천적으로 큰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다.


"천식"이다.


천식 환자였던 하뉴는 조금 달리면 갑자기 기침을 하거나, 밤에도 잘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이 계속된 날도 있었다고한다.


하뉴가 스케이트와 만난 것은 4 살 때. 스케이트 교실에 다니던 누나의 연습에 따라간 것이 계기 였지만 

목적은 천식을 극복하는 것에 있었다.


"엄마는 유즈루의 천식을 걱정하고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어했다. 

먼지를 흡입할 가능성이 적은 실내에서의 스케이트는, 유즈루에 딱 맞는 스포츠였습니다"(앞의 친구)


어린 시절부터 하뉴를 지도하고 현재는 카나가와 스케이트장의 전속 인스트럭터를 맡고 있는 

츠즈키 쇼이치로씨는 그 무렵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래는 천식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만, 유즈루는 몸통이 확고한 아이로,

"재​​능의 편린 "이 보였습니다. 몇번 넘어져도 일어나서 당시부터 심지의 강함, 오기가있는 곳이 있었어요. 

"누나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며 과감하게 점프와 스핀에 도전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잘 크면 세계에 통용되는 선수​​가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스케이트화를 처음 신은 순간부터, 빛났던 재능. 

하지만 여기에서 순풍에 돛 단 스케이트 인생이 시작되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그 에피소드를 밝힌 것은 하뉴 아버지의 동생으로, 현재는 보육교사인 고모이다.


"오빠는 계속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부 고문도 맡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유즈에게도 야구를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초등학교 3~4 학년 시절,

스케이트 연습이 조금 싫어져 있던 유즈에게,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야구 쪽이 돈도 덜 들고, 스케이트가 싫으면 그만 둬도 좋아"라고 "


천식증상이 개선되고 있었던 것도 있어서, 아버지의 제안은 하뉴를 고민하게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하뉴가 자신의 의지로 내놓은 대답은 "스케이트를 계속할래'였다.


"오빠의 질문은, 유즈가 다시 한번 스케이트에 대한 생각을 확인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후 오빠는 결코 스케이트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유즈에 "더 힘내라", "더 연습하라"고 말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오,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얘기하며 지켜보겠다는 것이 오빠의 자세였습니다.


유즈의 운동 신경과, 그 체형은 어머니가 물려준 것 입니다. 

우리 가족은 야구는 좋아하지만, 운동을 잘하는 집안이 아니고, 손발도 길지 않다니까요 (웃음) "(고모)


앞의 츠즈키 씨는 하뉴 부모의 교육방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뉴가의 경우 어떤 때는 밀접하고, 어떨 때는 내버려두는 교육을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관심을 가진 것에 가능한 협력한다. 

아이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것이 하뉴가의 교육 방침이었습니다. "


스케이트 뿐인 인간이 되지 마라


그렇게 계속 스케이트 하뉴는 점점 재능을 꽃피워 나간다. 

초등학교 4 학년 때 노비스 (주니어 아래의 클래스)의 전국 대회에서 첫 우승. 

중학교 1학년때에는 노비스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전일본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하뉴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함에 따라, 부모는'자주성'을 존중하는 한편, 

스케이트 뿐인 인간이 되지 않도록, 입이 닳도록 타일러 왔다고 한다. 

하뉴가 다니던 동북 고등학교 이가라시 카즈야 교장이 밝힌다.


"하뉴군은 공부도 스케이트도 제대로 양립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부모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피겨뿐만 아니라 공부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뉴 군에 평소 말하고 있던 것 같고, 원정간 곳에도 교과서와 참고서를 가지고 가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도 좋고 특히 이과 수학계를 잘했습니다. 

아버지가 수학 교사라고하는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10년에는 시니어 데뷔를 이루고, '11 년 4 대륙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상 최연소 메달리스트가 된 하뉴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12년 5월, 새로운 레벨 업을 목표로 바다를 건넌다.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의 지도자였던 브라이언 오서에게 사사하기 위해,

고향 센다이를 떠나 캐나다 토론토에 어머니와 둘이서 이주한 것이다. 

아버지와 누나를 고향 센다이에 남겨두고, 이국땅에서 어머니와 하뉴 두사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언어장벽과 생활환경에 익숙하지 못해,고생한 것 같습니다. 

캐나다는 고기 요리가 많지만, 유즈루는 입이 짧아서, 외식에 위가 거북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 소화가 잘 되는 국물요리를 먹이는 등, 유즈루의 건강 관리에 상당한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앞의 친구)


헌신적인 어머니의 지원도있어, 어떻게든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궤도에 오르고,

하뉴는 오서의 지도를 척척 흡수하고, 부쩍 부쩍 솜씨를 향상시켜 갔다.


하뉴를 오랫동안 취재한 스포츠 라이터는, 오서의 지도 방법이 하뉴 부모의 생각과도 맞았다고 한다.


"오서는 선수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매우 중요시하는 코치입니다."

이 기술은 이렇게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단정하는 코치도 있지만, 오서는 정반대. 

여러가지로 선수와 말을 하고, 그 선수에 맞는 방법을 함께 찾아주는 겁니다. "


링크 위에서는 항상 쏘는듯한 눈빛으로, 멘탈의 강함을 느끼게하는 하뉴.

하지만 어려서부터 하뉴를 아는 스케이트 동료는 하뉴의 안에는 지금도 "양면성"이 있다고 말한다.


"강한 유즈와 약한 유즈, 두가지 입니다. 그정도의 선수가 되어도, 

약한 유즈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 아니 그 약점이 있기 때문에 유즈인 것입니다."


상징적인 사건이 그 3/11 동일본 대지진의 날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순간 하뉴는 아이스 링크 센다이에서 연습 중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큰 흔들림에 휩싸인 하뉴는 선배 스케이터에 매달려 "싫어싫어싫어"라고 외쳤다. 

선배가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도 그저 울면서 떨고 있었다.

링크의 얼음이 깨지고 건물도 반파 상태. 가족은 전원 무사했지만, 전기,가스,수도 등 라이프 라인이 

끊어져,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이 4일간, 대피소 생활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케이트를 하고 있어도 좋은건지?"


공포가 사라진 후, 하뉴를 지배한것은 그런 감정이었다. 

고민하는 하뉴에게 앞을 향하게 한 것은 어머니의 뒷모습이었다고한다.


"엄마는 바로 분주하게 돌아 다니며, 유즈루가 연습을 재개할 수 있도록 

빙상 연맹이나 코치에게 모조리 머리숙여 부탁하고 다니고 있었다. 

이런 때야말로 유즈루는 스케이트 하지 않으면 안돼, 여기에서 쓰러져버리면 안된다.

어머니의 그 생각이 유즈루에 전해진 것입니다. "나는 자신만을 위해 스케이트하고 있는것이 아니다"라고

그가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 부터입니다. "(앞의 친구)


그랑프리 시리즈 중국배에서 격돌사고 직후 강행출전 한 것이, 일본 국내에서 찬반 양론을 일으켰다. 

하지만 앞의 스케이트 동료는 "거기에서 출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유즈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비판하는 사람들은"운동선수로서 어땠는가? "라고 말하는데, 유즈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좀 더 낭만적으로, 알기 쉽게 말하면 "순정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놈이에요.


사명감이라는 말이 적당할지 여부는 모르겠지만,링크에 서있는 이상은, 저기에서 기권한다고하는 선택은 

유즈에게는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또 다른 한명의 지원은 "마사지사"


그때, 피흘리는 하뉴의 옆에 붙어, 어깨를 끌어 안고 있던 초로의 인물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개인 트레이너로 정체사(整體師: 맛사지, 지압사 같은거...)인 키쿠치 아키라 씨이다.


하뉴에게 키쿠치씨는 "신경안정제"라고도 불리며, 천식의 치료에도 관여해 왔지만,

키쿠치씨는 기공술 같은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부 주간지에서 "수상한 인물"이라고 거론 된 적도있다.


할배얼굴 흐뭇흐뭇..

 요래요래 귀여운짓을 하는데 안이뻐 할 수가 있음? ㅎㅎ

(출처: tumblr anniegifs)

 

"과거 요코즈나/다카노 하나가 그랬던 것처럼 선수는 정체사나 점장이에 심취하기 쉽다. 

키쿠치 씨는"차크라의 선인"등이라고 불리며, 팬들 사이에서도 수상하다고 생각되고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뉴 본인은 물론 하뉴의 부모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앞의 스포츠 라이터)


센다이 시내에 있는 키쿠치씨의 접골원을 방문하여, 취재는 거부 되었으나, 

시술을 받으며 조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하뉴 군의 정신적 지주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정체사입니다. 

오히려 하뉴 군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미지의 세계에 데려와 줬으니까.


본인도 훌륭하지만 역시 부모님이 훌륭한 분입니다. 

가장 훌륭한 점은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금메달을 따면 본인도 부모도 우쭐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뉴가의 경우는 이럭저럭 10년이상의 교류가 되지만, 만났을 때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의 태도는, 부모님이 하뉴군에게 말로만 가르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등을보고, 자연스럽게 몸에 붙었겠지요 "


주위가 키쿠치 씨를 어떻게 말하든 신뢰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눈과 감각을 믿고 지금도 링크 사이드에 세운다. 그것도 또한 하뉴가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이다.


다양한 시련을 거쳐, 현재의 하뉴 유즈루가 있다. 

결코 자만하지 않고, 그렇지만 믿음은 확고하게. 

그런 하뉴를 만든 것은 결코 밖에 나서지 않는,부모의 가르침인 것에 틀림 없다.


주간 겐다이2015 년 1 월 31 일호


오늘의 사진은...음...하뉴가족 이야기 기념으로 레어 가족이되자 콜라보짤이나...ㅎㅎ ^^

그냥 흰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이쁜 하늉~


 

하뉴가 눈앞에서 가조쿠니나로우요...이런대사 치면 쓰러질 사람들이 한트럭 ㅋㅋㅋ...


플러스 이쁜짓~♡